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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죽음 이후에도 활동하는 '디지털 아바타', 우리 사회는 준비됐는가

디지털 아바타의 부활: 죽음 이후에도 말하는 존재

 

생전 남긴 문자, 음성, 사진, SNS 기록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아바타’는 더 이상 공상 과학의 영역이 아니다. 이미 몇몇 스타트업과 기술 기업들은 사망자의 데이터로부터 생성된 대화형 AI를 통해 가족과 친구들이 고인과의 대화를 지속할 수 있는 서비스를 실험하고 있다. 이들은 고인의 말투, 생각, 감정을 재현함으로써 일종의 **‘감정 복제 시뮬레이션’**을 제공한다. 특히 한국, 일본, 미국을 중심으로 일부 유가족들은 실제로 이 기술을 경험하며 위안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디지털 아바타는 고인의 ‘기억 조각’만으로 구성된 제한된 존재이며, 실존했던 인물과는 분명한 차이를 가진다. 인공지능은 맥락 없이 과거의 말만 반복하거나, 고인이 원치 않았을 표현을 추정해 낼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들은 위로를 받는 동시에 낯섦과 불쾌함을 함께 느끼는 이중적 경험을 겪게 되며, 이를 ‘디지털 슬픔의 역설’이라 부르기도 한다.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지만, 인간 감정과 기억의 복잡성까지 담기엔 아직 미완의 존재다.

특히 아바타가 제공하는 ‘대화형 위안’은 인간적인 대체가 아니라 **감정적 에코(Emotional Echo)**에 가깝다는 분석도 있다. 이는 실제 존재와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감정 패턴의 반복된 재생에 불과할 수 있다는 한계다. 유족들은 처음에는 위로를 받지만, 점차 그 아바타가 “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이 아닌” 존재라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그 결과, 미완의 이별이 반복되고, 때로는 현실과 디지털의 경계가 흐려지며, 감정의 왜곡이 일어난다.

또한 이 기술은 단지 추모 도구에 그치지 않고, 점차 기억 기반 인격 재현 기술로 진화 중이다. 일부 기업은 사망자의 성격 모델을 생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반응하는 시뮬레이션을 설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메시지 전달을 넘어, 고인의 ‘의사결정 스타일’을 재현해 기업 후계 관리나 유산 분배 의사결정에까지 활용하겠다는 시도도 등장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디지털 윤리와 법률의 공백 속에서 매우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 향후 사회적 갈등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결국, 디지털 아바타는 단순한 기술 제품이 아니라, ‘삶의 재해석 방식’이라는 점에서 철학적·심리적·법적 질문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 우리는 과연 죽은 사람을 어디까지 살아 있게 둘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존재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기술이 묻기 시작한 이 질문에, 사회는 아직 분명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애도의 방식 변화: 정서적 회복인가, 기억 왜곡인가

 

디지털 아바타를 통한 사후 소통은 기존의 애도 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고인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시간에 따라 상실을 극복하는 것이 애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디지털 아바타는 이 이별의 과정을 ‘연장된 대화’로 전환시키며, 오히려 슬픔을 늦추는 정서적 역기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어린 자녀나 노년의 배우자가 아바타에 지속적으로 의존할 경우, 고인을 현실에서 떠나보내지 못하고 심리적 고착 상태에 빠질 위험도 존재한다.

심리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가상 애도 지연 증후군’으로 개념화하고 있으며, 디지털 아바타 사용이 정서적 회복을 돕는 도구가 될지, 반대로 기억을 왜곡하는 기술적 간섭이 될지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감정적으로 고인을 가까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위로가 되지만, 인간은 결국 ‘죽음의 사실’을 인정함으로써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따라서 아바타 기술은 치유보다는 추억의 기록 보조 도구로써 신중히 활용돼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제도는 공백, 윤리는 불완전: 사회적 대응의 부재

 

디지털 아바타 기술이 실질적 수준에 도달한 반면, 이에 대한 법적‧윤리적 제도는 아직도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망자의 디지털 인격’**에 대한 보호 조항은 존재하지 않으며, 아바타의 생성과 사용 여부는 고인 본인의 동의 없이 가족 또는 기업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이는 사망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고, 나아가 그 존재 자체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AI가 재현한 디지털 인격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귀속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플랫폼 회사가 아바타에 대한 권리를 가지게 될 경우, 향후 고인의 이미지나 발언이 상업적 콘텐츠나 정치적 목적 등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다수 국가에서는 개인정보보호법을 통해 사망자의 일부 정보 삭제를 요청할 수 있지만, 이보다 적극적인 ‘디지털 추모권’, ‘기억 보존권’ 같은 신규 권리의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단지 법의 부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사회 전반의 윤리 기준 자체가 이 기술의 등장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예를 들어, 고인의 디지털 흔적을 복원해 만든 AI가 유가족에게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한 애도인지, 아니면 감정의 반복 소비에 불과한지는 별개 문제다. 고인을 AI로 다시 불러오는 행위가 '추모'인지, '재가공'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이 사회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디지털 존재가 사회적으로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조차 부재하다. 현재로선 사후 AI의 발언이 허위사실을 포함하거나, 고인의 생전 입장과 반대되는 메시지를 생성하더라도 이에 대한 규제는 불가능하다. 윤리적 책임의 소재도 불분명하다. 플랫폼이 책임을 회피하고, 유족이 제어할 수 없으며, 고인은 이미 세상에 없기 때문에 이 문제는 공중에 붕 떠 있는 상태다.

학계와 법조계는 최근 들어 이 문제를 “미래 인격 권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도를 시작하고 있다. 사망 후에도 기억과 정체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디지털 잔존권’, ‘기억권의 확장’, ‘가상 존재 명예보호법’ 같은 용어들이 조심스럽게 등장하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의 개인정보보호와 사후 초상권 개념을 디지털 환경에 맞게 재정비하려는 시도의 일부로 평가된다.

이처럼 기술은 빠르게 전진하고 있지만, 그에 대응하는 사회적 틀은 아직 미비하다. 생전의 데이터가 사후에 누구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쓰일 수 있는지를 명확히 정해두지 않는다면, 디지털 아바타는 인격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왜곡과 착취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에 맞춘 선제적이고 입체적인 사회적 대응이다.

 

살아 있는 지금, 준비해야 할 기억의 주권

기술이 ‘죽은 후에도 존재하는 나’를 만들 수 있는 시대, 우리는 그 준비를 단지 가족이나 기업에 맡길 수 없다. 진정한 디지털 아바타 윤리는 ‘생전에 스스로 결정하는 설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내가 죽은 이후 나의 목소리, 나의 감정, 나의 생각이 어떻게 재현되기를 바라는지, 혹은 전혀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지 명확하게 남기는 것이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 ‘디지털 사전 동의서’ 혹은 ‘AI 사용 유언장’이다.

이 문서에는 내 데이터의 공개 여부, 아바타의 사용 기간, 열람 가능 대상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할 수 있어, 사망 이후에도 기억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존중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이와 같은 설계를 위해서는 감정 기반 콘텐츠를 생전에 직접 정리하고, 개인 기록을 구조화된 방식으로 남겨야 한다. 이는 단지 정보를 정리하는 작업이 아니라, 존엄을 선택하는 행위다. 인간이 기술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히려 기술 이전의 자기 이해와 선택이다.

 

 

죽음 이후에도 활동하는 '디지털 아바타', 우리 사회는 준비됐는가

기술보다 늦은 사회, 준비 없는 기억은 방치된다

 

AI는 이제 죽음의 경계를 넘어 인간을 ‘계속 존재하게 만드는 기술’로 진화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여전히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법은 늦고 윤리는 모호하며, 무엇보다 고인 스스로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내 기억을 누구에게, 어떻게, 얼마나 남길 것인가’에 대한 개인적 설계다.

디지털 아바타는 단지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재현이며, 정체성의 연장이며, 때론 존재의 왜곡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기술을 어떻게 정의하고 규정하느냐에 따라, ‘디지털 사후 세계’의 윤리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지금 나의 결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