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 2030 세대를 위한 디지털 유산 사전 점검 리스트
디지털 유산, 더 이상 노년층만의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유산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50대 이상, 혹은 가족을 둔 기혼자들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현재 인터넷 사용 환경을 고려할 때, 2030 미혼 세대야말로 가장 많은 디지털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 중 하나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수천 장의 사진, SNS 계정, 구글 드라이브에 저장된 개인 기록, 넷플릭스나 유튜브 프리미엄 같은 구독 서비스, 심지어는 온라인 게임 계정까지 모두 디지털 유산으로 분류된다.
특히 미혼인 경우, 사망 시 자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명확한 ‘상속 대상’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미리 디지털 자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필요한 경우 이를 전달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단순한 정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존엄을 지키는 중요한 행위다. 유족에게 혼란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사적 기록과 재산을 명확하게 관리하는 문화는 이제 청년층에게도 필수가 되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쌓이는 디지털 흔적들
2030세대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앱을 사용하고,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를 누리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만큼 온라인상에 남겨진 ‘디지털 흔적’은 대부분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예를 들어, 매달 자동 결제되는 온라인 구독 서비스는 소유자가 사망하더라도 계속 결제되거나, 카드 해지가 될 때까지 방치된다. 디즈니+, 웨이브, 멜론, 쿠팡, 넷플릭스 등 사용자가 사망한 뒤에도 계정이 살아 있으면 요금은 계속 청구될 수 있다.
또한 SNS 계정에 남겨진 게시글, 사진, 댓글은 고인의 성격과 사생활을 반영하는 만큼, 사망 이후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유족에게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본인이 원한다면 계정 삭제, 추모 모드 전환, 타인에게 열람 허용 등 다양한 선택지를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 설정도 하지 않으면, 해당 플랫폼의 정책에 따라 무작위로 계정이 삭제되거나, 가족이 접근조차 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사전 점검 리스트 작성이 필요하다.
암호화폐와 가상자산, 2030세대의 새로운 유산
최근 들어 2030세대를 중심으로 암호화폐, NFT 등의 가상자산을 보유한 사용자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자산들이 대부분 온라인 지갑 혹은 거래소에 존재하며, 일반적인 상속 절차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리된다는 점이다. 특히 암호화폐는 ‘지갑 키’를 알지 못하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망 후 이 정보를 상속자나 가족이 모른다면,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어치 자산이 통째로 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생전에 개인 지갑의 종류, 위치, 복구 시드 문구(Recovery Phrase), 사용한 거래소의 목록 등을 별도로 기록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암호화된 USB나 종이 지갑에 이 정보를 저장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구성해야 한다. 디지털 자산이 '지켜야 할 자산'이라는 인식이 2030세대에게는 특히 필요하다.
디지털 유언장, 꼭 법적 문서가 아니어도 된다
많은 2030세대는 유언장이라고 하면, 변호사와 법적 문서, 복잡한 절차를 떠올린다. 하지만 디지털 유언장은 반드시 공증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가족이나 지인이 고인의 자산을 제대로 파악하고 처리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글 스프레드시트나 엑셀 같은 쉬운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계정 목록, 로그인 방법, 보관 장소, 삭제 또는 유지 여부 등을 문서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간단한 항목만 정리해도 충분하다:
플랫폼명 (ex. 구글, 인스타그램, 업비트)
계정 아이디/이메일
로그인 방식 (USB, 비밀번호 관리자 앱 등)
삭제 여부 또는 유지 희망
특이사항 또는 비고
이 문서는 평소에는 암호화된 USB 또는 클라우드에 보관하고, 구글 ‘비활성 계정 관리자’나 애플의 ‘유산 연락처’ 기능과 연계해 특정 기간 동안 접속하지 않으면 가족에게 열람 권한이 넘어가도록 설정하면 된다. 이처럼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디지털 유언장이야말로 2030세대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준비다.
미혼일수록 더 필요한 ‘사전 지정인’ 설정
미혼인 2030세대는 사망 시 자산이나 정보를 자동으로 넘길 배우자나 자녀가 없기 때문에, 특정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생전에 미리 지정해 두는 것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기능이 구글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이다. 이 기능을 통해 사용자는 일정 기간 이상 로그인이 없을 경우, 설정해 둔 연락처로 이메일이 발송되고, 미리 지정한 데이터(예: 메일, 드라이브, 유튜브 채널 등)를 공유하거나 계정을 삭제할 수 있다.
애플도 마찬가지로 ‘유산 연락처’ 기능을 제공한다. 아이폰 사용자라면 Apple ID 설정에서 유산 연락처를 지정하고, 상대방에게 접근 키를 전달해두면, 사후에 상대방이 고인의 데이터를 합법적으로 열람하고 처리할 수 있다. 이러한 설정은 몇 분이면 완료되지만, 하지 않으면 남겨진 사람이 수개월 동안 법적 증명과 플랫폼 대응을 반복해야 할 수도 있다. 미혼이라고 해서 디지털 유산을 방치해두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혼자’인 사람일수록, 자신의 데이터를 어떻게 정리하고 남길 것인지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무리
2030세대, 특히 미혼인 사람일수록 디지털 유산은 더 이상 먼 미래의 개념이 아니다. 사진, 메일, SNS, 코인, 구독 서비스까지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쌓이고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이라도 가볍게 정리표 하나 작성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디지털 유산을 정리한다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 정리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마지막까지 책임지는 중요한 준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