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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디지털 초상화 삭제 요청이 거절당한 실제 사례 분석

삭제 거절 사례 개요: 누구의 결정이었나

2023년, 국내 한 AI 기술 스타트업은 사망자의 생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초상화를 제작해 유가족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범 운영했다. 그러나 서비스 개시 후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유족 중 일부가 강력하게 “삭제 요청”을 제기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고인이 생전에 이 같은 디지털 복제에 동의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 요청이 최종적으로 거절되었다는 점이다. 해당 기업은 당시 고인의 딸이 서비스 신청 당시 제공한 사진, 음성, SNS 기록 등을 바탕으로 초상화를 제작했으며, “계약 당사자 본인이 유족이므로 삭제 권한은 최초 신청자에게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즉, 유족 간 합의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는 콘텐츠 삭제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디지털 초상화가 단지 기술 문제가 아니라 기억의 소유, 감정의 경계, 윤리의 충돌이라는 복잡한 사안을 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고인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해 가족 간의 인식 차이가 클 경우, 삭제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초상화 삭제 요청이 거절당한 실제 사례 분석

기술 제공자의 입장: 삭제 불가 논리의 근거

해당 AI 기업은 삭제 요청을 거절한 근거로 “콘텐츠는 신청자와의 계약을 바탕으로 생성되었고, 해당 콘텐츠는 기술적 저작물로 간주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고인의 초상화는 단지 고인을 모사한 결과물이 아니라, 신청자(자녀)가 제공한 자료와 기업의 알고리즘이 결합된 합성 자산이라는 논리였다.

또한, AI로 생성된 디지털 인격은 특정 개인의 사적 기록을 넘어, 알고리즘의 학습 결과로서 일종의 공유된 창작물로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는 타당할 수 있으나, 감정적으로는 많은 논란을 야기한다.

특히 기업은 “이미 공개된 상태이며, 타 유족의 정서적 치유와 사회적 공유 목적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삭제 요청을 거부했다. 이는 디지털 초상화가 한 개인의 유산을 넘어서 ‘공공적 기억’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왔다. 하지만 정작 고인의 동의 여부는 기술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검토되지 않은 채 판단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큰 비판을 받았다.

 

 

유족의 반발과 감정적 피해

고인의 배우자와 다른 자녀는 이 초상화를 처음 접한 순간, “이건 그가 아니었다”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말투, 감정 표현, 영상 속 미묘한 표정까지, 고인의 실제 성격과 너무 달랐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당 디지털 초상화가 오히려 고인의 기억을 왜곡하고, ‘살아 있던 사람’의 존재를 기계적인 방식으로 재가공한 위조물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유족 중 일부는 심리 상담까지 받게 되었고, “고인의 인격이 훼손되었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법률 상담을 의뢰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행 법률에서는 사망자의 디지털 이미지나 인격에 대한 명확한 보호 조항이 없으며, 초상권은 사망과 동시에 소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삭제는커녕, 유족 간 갈등만 더욱 커졌다. 디지털 초상화를 만들었던 자녀와 반대한 가족들 사이의 관계는 단절 상태에 이르렀으며, 오히려 기억이 사람을 연결하는 것이 아닌, 분열시키는 도구가 되었다는 아이러니를 남겼다.

특히 이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디지털 초상화가 의도와는 다르게 ‘기억을 왜곡하는 도구’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고인의 배우자는 “그 사람은 절대 저렇게 웃지 않았다. 저건 내가 알던 그의 표정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AI가 구현한 이미지가 고인의 실제 특성과 전혀 다르게 표현되었다고 주장했다. AI는 생전 남긴 콘텐츠를 기반으로 표정과 말투를 조합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확률적 계산일 뿐이며, 고인의 깊은 내면까지 반영할 수는 없다.

이로 인해 유족은 큰 심리적 괴리를 느꼈고, 일부는 해당 초상화를 볼 때마다 ‘죽은 사람을 모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호소했다. 이 감정은 단순한 불쾌감을 넘어, 애도 과정에서의 감정 왜곡, 상실감 심화, 관계 불안정으로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에서 ‘디지털 애도권(Digital Mourning Rights)’이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안하고 있다.

즉, 고인의 디지털 재현물이 유족의 심리적 회복을 도와야 하며, 오히려 트라우마를 유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족이 고인의 기억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디지털 콘텐츠는 보조 수단일 뿐,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윤리적 원칙이 강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기술적 완성도와 알고리즘 정확도를 근거로 콘텐츠의 정당성을 주장했고, 이에 대해 유족은 ‘기억은 기술로 환산할 수 없는 것’이라는 반론을 제기했다. 결국 디지털 초상화가 남긴 것은 고인을 더 오래 기억하는 길이 아니라, 그 기억을 둘러싼 해석의 갈등이었고, 이는 유족 간 오랜 감정적 분열로 이어졌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디지털 기술이 감정에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법적·윤리적 해석: 누구의 권리인가?

이번 사례는 법적·윤리적으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디지털 초상화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전 본인의 동의가 없고, 자녀 중 일부의 요청으로 생성된 콘텐츠를 다른 유족이 삭제할 권한이 없다는 판단은 현재의 디지털 법제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준다.

둘째, 디지털 초상화가 감정적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자산으로만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고인의 인격을 AI가 모사하면서 생긴 수많은 문제에 대해, 현행 민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기업의 기술적 권한과 개인의 기억 권리 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유족이 감정적으로 고통을 겪는 상황에서도, 플랫폼은 콘텐츠를 ‘기술 자산’으로 간주하고 유지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다. 이는 향후 디지털 사망자의 권리와 사적 감정 보호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하게 환기시킨다.

 

삭제 요청이 거절되는 사회,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이 사례는 단지 한 가족의 갈등이 아니다. 디지털 초상화 시대를 맞이한 모든 이들이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겪게 될 수 있는 미래를 보여주는 경고장이기도 하다. 디지털 초상화는 사랑을 담을 수도 있지만, 그만큼 기억을 왜곡하거나 감정을 상하게 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에 앞선 감정 설계와 동의 절차의 제도화다. 특히 다음의 3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생전에 디지털 초상화 생성을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문서화

디지털 유언장 또는 AI 콘텐츠 활용 동의서 작성

유족 간 콘텐츠 관리 권한과 열람 기준의 사전 합의

이처럼 고인을 위한 기술이 진정한 ‘기억의 다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감정과 존엄을 먼저 고려한 준비가 필요하다. 삭제 요청이 거절되는 상황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결국 사람 간의 합의와 이해, 그리고 윤리를 미리 설계하지 않은 데서 오는 결과다. 기억은 남기는 것만이 아닌, 어떻게 남길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