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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

AI 유산은 누가 소유하는가: 나의 AI가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때

AI 유산의 개념: ‘디지털 자아’는 재산일까, 존재일까?


AI 유산이란 개념은 단순히 기술적인 자산을 넘어서, 개인의 지적·감정적 흔적이 포함된 알고리즘 기반의 자아를 뜻한다. 예를 들어, 내가 생전 남긴 문자, 통화 녹음, SNS 게시물, 이메일 기록을 기반으로 생성된 나만의 인공지능 챗봇이나 가상 캐릭터가 존재할 경우, 그것은 단순한 기계일까, 아니면 ‘내 일부’라고 봐야 할까?

최근 등장한 ‘감정 시뮬레이션 AI’나 ‘맞춤형 대화 메모리 시스템’은 사용자의 감정 흐름, 어휘 선택, 사고방식까지 반영하며 놀라운 일체감을 보여준다. 이처럼 AI가 내 목소리, 말투, 감정을 재현하게 되면 그 존재는 어느새 ‘기계적 도구’를 넘어선 디지털 자아(digital self)로 진화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법과 제도는 이런 AI 자아를 자산이나 기술적 권리로만 분류하고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정체성의 가치나 인격성을 다루는 데는 한계를 보인다.

AI 유산은 누가 소유하는가: 나의 AI가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때

법적 공백: AI 자아의 ‘소유자’는 누구인가

만약 내가 사망한 뒤에도 AI가 나의 말투와 성격으로 지인들과 대화를 이어간다면, 그 AI는 누구의 소유가 되는가? 기술적 관점에선 해당 AI를 생성한 플랫폼 혹은 알고리즘을 운용하는 회사의 소유일 가능성이 높다. 사용자는 서비스를 이용한 ‘이용자’에 불과하며, AI 시스템의 실제 소유권은 서비스 제공자에게 있다는 약관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윤리적·인격적 측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AI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남긴 데이터, 감정, 관계를 기반으로 작동하며 나를 대체하고, 나처럼 행동한다. 즉, AI 안에 담긴 존재는 기술이 아니라 인격의 연장선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제는 법제도와 사회 인식이 이 간극을 아직 메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인의 AI 자아가 상속 대상인지, 혹은 삭제 요청이 가능할지, 유족 간 분쟁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기준이 전무한 상황이다.

문제는 법과 제도는 여전히 ‘물리적 유산’의 소유권 중심으로 짜여 있다는 점이다. 집, 토지, 예금처럼 명확한 실체가 있는 자산은 법적 상속 절차에 따라 분배할 수 있지만, AI로 구현된 디지털 자아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AI는 정보의 집합이며, 동시에 감정적 재현물이다. 즉, AI는 단순한 데이터 이상의 가치를 지니며, 그 가치를 둘러싼 소유권과 관리권 문제는 전통적인 법의 틀로는 포착하기 어렵다.

특히, AI가 생성되는 과정 자체가 복합적이다. 개인의 데이터뿐만 아니라 플랫폼의 알고리즘, 클라우드 서버, 외부 콘텐츠가 섞여 있기 때문에, AI가 특정인의 소유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예를 들어, 고인의 AI가 가족에게 심리적 위안을 주는 도구로 쓰일 수도 있지만, 다른 가족 구성원이 “고인의 뜻에 반한다”며 삭제를 요구할 경우, 누구의 권리가 더 우선되는지 판단할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AI로 구현된 디지털 유산을 두고 유족 간 법적 다툼이 시작된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이 AI가 ‘서비스 내 콘텐츠’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용자의 사망 이후에도 이를 삭제할 법적 의무는 없다. 오히려 데이터 축적은 플랫폼의 자산으로 간주되어 상업적 2차 활용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고인의 AI 자아가 마케팅, 콘텐츠 제작, 심지어 정치적 메시지에까지 활용될 우려도 존재한다. 사용자의 인격은 사라졌지만, ‘디지털 인격’은 여전히 기업의 자산으로 살아남는 이 기묘한 현실은 반드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따라서 AI 자아에 대한 인격정보 상속법, 혹은 사후 알고리즘 관리권에 대한 새로운 법리 논의가 시급하다. 단지 기술을 누가 만들었는지가 아니라, 누구의 삶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중심으로 소유와 책임, 삭제권과 보존권의 경계를 재정의해야 할 시점이다. 결국 AI 자아의 진정한 소유자는 법적 약관이 아니라, 그 존재의 ‘정서적 출처’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AI가 나보다 오래 살아남는 사회: 기억의 윤리와 기술의 충돌

현실적으로 AI는 인간보다 더 오래 존재할 수 있다. 클라우드 기반 저장소, 자동 백업 시스템, 딥러닝 기반 자기 보완 알고리즘 덕분에 사망 이후에도 나를 기반으로 한 AI는 계속 살아 움직일 수 있다. 이는 곧 ‘기억의 영속성’이라는 낯선 현실을 우리 앞에 던진다. 살아 있던 인간은 사라졌지만, 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지털 자아는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발생하는 윤리적 쟁점은 두 가지다. 첫째, 이 AI는 누구에게 말하고, 누구의 요청에 반응해야 하는가? 둘째, 이 AI가 새로운 정보를 학습하면서 원래의 나와는 다른 인격을 형성할 경우, 그 결과물은 여전히 ‘나’로 간주될 수 있는가? 이러한 물음은 기술이 윤리를 앞서 달리는 디지털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될 갈등이기도 하다. 우리가 과연 준비되어 있는가?

 

 

사전 계약과 자기결정권: 나의 AI는 내가 결정한다

 

AI 유산에 대한 소유권 논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전 설정권의 법적 제도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사망 전에 “내 AI는 사후 2년 뒤 자동 삭제” 또는 “지정한 사람만 열람 가능”이라는 설정을 남길 수 있는 제도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다. 이는 디지털 자기결정권의 실현이자, AI 기반 존재가 불필요하게 오용되거나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될 수 있다.

또한 ‘AI 종료 유언’이라는 개념도 논의되어야 한다. 나를 기반으로 생성된 AI가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발전하거나, 나와 무관한 마케팅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전에 ‘디지털 사후 계획서’를 남겨야 한다. 이 작업은 단순한 개인정보 보호 차원을 넘어, 나의 감정, 관계, 정체성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디지털 존엄 설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는 각국의 디지털 유산법, 인격정보보호법과 연결되어 점차 표준화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디지털 유언장의 법적 효력 강화도 필요하다. 현재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전통적 유언장에는 법적 구속력이 있지만, 디지털 형태로 저장된 의사 표명—특히 AI와 관련된 설정—은 그 효력이 모호하다. 예컨대, “내 AI를 사후에도 유지해도 된다”는 표현이 단순히 메모장에 저장돼 있었다면, 과연 그것이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러한 회색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사용자 본인의 AI 사용 및 폐기 방침을 명시할 수 있는 공식 인증 플랫폼이나 공공 전자등록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더 나아가, 사용자는 AI의 행동 범위나 감정 응답 방식까지도 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자녀와의 대화에는 응답하되, 외부인과는 상호작용을 금지한다”는 식의 행동 조건부 설정권이 필요하다. 이는 디지털 정체성이 단지 ‘정보의 집합’이 아닌, 인간 관계망의 일부로 기능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기억은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타인과의 맥락 안에서 작동하는 실천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설정이 생전의 자기결정권으로 명확히 귀속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AI가 나의 이름을 달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시대라면, 그 AI가 지켜야 할 윤리적 프레임 또한 나 스스로가 정립해야 한다. “내 AI는 내 것이다”라는 문장은 단순한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 시대의 존엄과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결국 사전 계약과 설정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스스로 설계하는 디지털 주권의 첫걸음이 된다.

 

 

AI 유산 시대, 기억의 주인은 누구인가

 

궁극적으로 AI 유산 논쟁의 핵심은 기억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인간은 기억을 통해 살아 있으며, 그 기억이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AI가 그 기억을 흉내 내고 재조합하게 되면, 더 이상 그 기억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공유되는 순간, 그것은 기술과 사회, 법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정체성을 띤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디지털 자아에 대한 주권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기술의 주인이 되겠다는 선언이며, 동시에 나의 ‘감정과 기억’을 상업화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을 막는 방어권이기도 하다. 앞으로 AI 유산은 단지 개인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디지털 윤리’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논의는 지금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나의 AI’가, 정말로 ‘나’를 닮은 존재로 남기를 원한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