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망 처리란 무엇인가?
디지털 사망 처리란 개인이 사망한 후 그 사람이 생전에 사용하던 온라인 계정, 클라우드 자료, 디지털 자산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종료하거나 이전하는 절차를 말한다. 오프라인에서는 사망 신고를 통해 주민등록 말소, 계좌 해지, 보험 정리 등의 절차가 자동으로 진행되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이러한 자동 절차가 사실상 부재하다.
구글,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의 플랫폼은 자체적으로 ‘사망자 계정 처리 정책’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이용자가 생전에 설정하지 않으면 유족이 복잡한 절차를 거쳐 수동으로 처리해야 한다. 특히 암호화폐, 유튜브 수익, 클라우드 사진 등은 접근조차 어려워 유족의 감정적·행정적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러한 배경에서 최근 떠오르고 있는 개념이 바로 ‘디지털 사망 처리 시스템의 국가 통합 관리’다. 국가가 사망자 정보를 확인하면 자동으로 각 플랫폼과 연동되어 디지털 계정과 자산도 처리되는 시스템을 의미하며, 아직 국내에는 본격적으로 논의조차 되지 않은 개념이다.
해외에서는 어떤 시도가 있었을까?
해외에서는 디지털 사망과 관련된 논의가 한국보다 앞서 시작됐다. 독일 연방법원은 2018년 사망자의 페이스북 계정을 상속인에게 인계하라는 판결을 하면서, SNS 계정도 상속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법적으로 인정했다. 이는 유족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이 계정 접근을 막자 제기된 소송이었다. 이후 유럽에서는 디지털 자산의 ‘법적 상속’에 대한 법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미국은 RUFADAA라는 법률 모델을 도입해, 디지털 자산의 상속과 관리 절차를 정비했다. 또, 구글과 애플은 사망자를 위한 계정 설정 기능(비활성 계정 관리자, 유산 연락처 등)을 시스템화하고 있다. 이처럼 일부 국가는 민간 플랫폼이 아닌 정부 기관 주도로 사망자 계정 처리 시스템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에스토니아는 전자 정부 시스템을 활용해, 주민등록 말소와 동시에 일부 디지털 계정 정리를 연동하는 시스템을 시험 중이다. 이는 국가 데이터와 플랫폼 계정이 연계되는 최초의 디지털 사망 관리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왜 디지털 사망 처리가 어려운가?
한국에서는 현재 디지털 사망을 전담하거나 관리하는 국가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망자가 발생하면 가족이 주민센터를 통해 사망신고를 하게 되고, 해당 정보는 금융기관이나 일부 공공기관과 공유되지만, 온라인 계정이나 디지털 자산과는 연동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의 엄격한 해석 때문이다. 현행법상 사망자의 정보도 ‘민감정보’로 분류돼, 유족이 고인의 온라인 계정에 접근하거나 삭제를 요청하려면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유언장 또는 법원 명령서까지 제출해야 하는 구조다. 이에 따라 디지털 계정을 일괄적으로 정리하는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플랫폼 기업과 정부 간의 데이터 연계는 거의 없다. 민간 플랫폼은 자사 약관에 따라 ‘사망 처리’ 정책을 운용할 뿐이고, 정부는 이를 통제하거나 표준화할 법적 근거가 없다. 결국 각 유족이 개별적으로 수십 개의 플랫폼에 연락을 취하고, 매번 동일한 서류를 반복 제출해야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정부 주도 디지털 사망 처리 시스템의 가능성과 필요성
현실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부 주도 디지털 사망 처리 시스템은 반드시 검토돼야 한다. 디지털 자산이 실질적인 경제적 가치와 감정적 가치를 갖고 있는 현실에서, 온라인상의 흔적도 하나의 유산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혼 1인 가구, 고령자, 고독사 등이 증가하는 현재, 사망 후 아무도 고인의 온라인 자산을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부와 주요 플랫폼 간의 ‘사망자 정보 연계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주민등록 사망 신고 시, 유족이 희망하면 주요 플랫폼에 사망 정보가 자동 전달되어 계정 삭제, 계정 이전, 데이터 보존 등 처리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이 경우 유족은 반복적인 절차 없이, 한 번의 신청으로 디지털 자산을 일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유언장이나 사전 동의 문서가 있다면 해당 정보를 시스템에 미리 등록해 둘 수 있는 기능도 필요하다. 디지털 유언장과 행정정보를 연계해, 생전의 의사가 사후에 자동 실행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디지털 사망 처리는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실현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
디지털 사망 처리 시스템의 실현을 위해선 먼저 관련 법제도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특히 사망자의 개인정보 처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하며, 유족이 정당한 절차로 계정에 접근하거나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개정된 개인정보보호법 조항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도 필요하다. 현재 민법에서는 디지털 자산에 대한 명확한 조항이 없기 때문에, 유산으로 분류되는지 여부 자체가 애매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디지털 자산을 유산 범위에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는 민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술적 연계가 가능한 API 기반 사망 통지 시스템 개발이 필요하다. 행정안전부, 국세청, 금융기관처럼 이미 사망 정보를 주고받는 기관 외에도, 주요 플랫폼 사업자가 참여할 수 있는 ‘디지털 상속 통합 플랫폼’을 구축한다면, 기술적 실현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제도와 기술의 뒷받침이 이뤄진다면, 지금은 불가능해 보이는 ‘정부 주도의 디지털 사망 관리 시스템’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할 수 있다.
정리
디지털 사망 처리는 온라인 자산 시대의 필수 행정
해외는 법적 근거 마련 + 민간 시스템 적극 도입
한국은 개인정보보호법·법적 공백이 가장 큰 제약
공공-플랫폼 간 연계 시스템 구축 필요
민법·개인정보법 개정이 선행돼야 실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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